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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게 개방 된 도서관? 해외 공공 도서관의 특별한 서비스

hpsh2227 2025. 4. 12. 09:32

노숙자에게 열린 도서관: 공공 공간의 새로운 역할

과거 도서관은 지식을 보관하고 조용히 책을 읽는 공간으로만 인식되었지만, 현대 사회의 도서관은 그 역할과 의미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강조되면서, 공공 도서관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공간’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숙인을 위한 서비스는 도서관의 공공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여겨진다. 노숙인은 주거 불안정, 고립, 빈곤, 정신 건강 문제 등 다양한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로, 안전한 쉼터와 정보 접근이 절실한 계층이다. 도서관이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하고 도움을 제공한다면, 이는 단지 서비스 제공을 넘어 사회의 인식 변화까지 견인하는 상징적 행보가 된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는 노숙인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인간 존엄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도서관: 사회복지사와 함께하는 포용 모델

미국은 공공 도서관 시스템이 매우 발전된 나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시카고 공공도서관(Chicago Public Library)은 노숙인을 단순한 도서관 이용자가 아닌 '도움이 필요한 시민'으로 바라보며, 도서관 내에 **전문 사회복지사(Library Social Worker)**를 상주시키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복지사는 도서관에 머무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의료 정보, 정신 건강 상담, 긴급 주거 지원, 식품 배급소 연결 등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또한 도서관 직원들에게도 관련 교육을 실시하여, 노숙인을 향한 부정적 시선을 줄이고 공감적 응대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지 복지 차원이 아니라, 노숙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로 다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인간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 모델은 미국 전역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며, 타 도시 도서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공공 도서관: 실용적 서비스로 실현하는 권리

샌프란시스코 공공도서관은 ‘홈리스 웰컴 프로젝트’를 통해 노숙인을 도서관의 적극적인 사용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노숙인을 위한 직업 훈련 세미나, 컴퓨터 활용 교육,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기본적인 위생용품 제공과 셀프 청결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도서관은 노숙인들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도서관 입구에는 “모든 시민은 동등하게 환영받습니다”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으며, 직원들 역시 노숙인 응대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 또한 노숙인을 위한 실용적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무료 의료상담, 이력서 작성 워크숍, 긴급 난방센터 연결 서비스 등은 도서관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을 넘어 실질적인 복지 플랫폼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북미의 주요 도서관은 ‘지식의 평등’뿐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럽의 포용적 도서관: 공간 설계부터 달라진다

유럽의 도서관 역시 노숙인을 위한 서비스 제공에 적극적이다. 핀란드의 헬싱키에 위치한 ‘오디(Oodi) 도서관’은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곳은 초기 설계부터 모든 사람의 이용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무장애 도서관’으로, 휠체어 사용자뿐 아니라 노숙인과 같은 사회적 소외 계층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오디 도서관은 노숙인을 위해 커뮤니티 라운지, 무료 카페 공간, 쉼터 같은 느낌의 좌석 구조를 운영하며, 특정 시간에는 사회복지기관과 연계하여 지원 상담도 제공한다. 독일 베를린의 일부 공공 도서관은 노숙인을 위한 야간 쉼터로도 개방되며, 야간 이용객에게 따뜻한 음료와 담요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처럼 유럽은 도서관을 ‘복지의 전초기지’로 간주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공간 디자인과 서비스 프로그램을 통해 인권 중심의 공공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도서관, 인간 존엄을 지키는 가장 조용한 공간

노숙인을 위한 공공 도서관의 특별한 서비스는 단순한 복지 혜택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도서관은 사회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공 공간이다. 특히 노숙인처럼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도서관은 물리적 휴식처이자 정신적 회복의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들은 따뜻한 장소, 깨끗한 물, 조용한 공간, 그리고 정보에 대한 접근이라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필요를 갖고 있다. 도서관이 이들에게 단순한 임시 피난처가 아닌 ‘새로운 시작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의 품격을 높이는 일일 것이다. 결국 공공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 존엄을 조용히 지켜내는 가장 품격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나라, 더 많은 도시들이 이 포용의 흐름에 동참하길 기대하며, 한국의 도서관 역시 이러한 국제 사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길 바란다.